신들린 소녀를 둘러싼 미스터리 공포물 '불신지옥'으로 잘못된 믿음에 관해 이야기했다. 인간의 나약함이 가져온 잘못된 믿음이 결국 광신으로 돌변하는 순간의 인간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그리고 이러한 맹목적인 믿음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봤다. 이용주 감독이 무려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서복'은 '불신지옥'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감독은 지난 2013년부터 '서복' 이야기를 쓰기 시작, 2016년 초고를 완성했다. 이후 각색을 거쳐 2018년 공유와 박보검을 캐스팅, 2019년 말 크랭크업했다. 코로나19로 연기 끝에 올해 어렵사리 관객들과 스크린을 통해 만나게 된 '서복'은 죽음과 삶에 관한 감독의 철학적 고민과 질문이 담긴 작품이다.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불신지옥'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화상 일 대 일 인터뷰로 만난 이 감독은 '서복'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죽음과 삶, 이를 둘러싼 인간의 두려움과 욕망,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왜 '복제인간'을 통해 말하려 했는지를 하나씩 이야기했다. 먼저 영화 속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감독은 '서복'에서 죽음과 삶에 관한 근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 사이에는 죽음에서 파생된 인간의 본질적인 두려움과 욕망이 담겨 있다. 이 질문의 시작은 그의 전작에서 비롯됐다.
"먼저 제 입장에서는 제일 처음 쓴 시나리오가 '건축학개론'이에요. 이후 '불신지옥'을 썼는데, 개봉은 '불신지옥'이 먼저 하게 됐죠. 저는 '서복'을 쓸 때 '불신지옥'의 확장판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서복'의 키워드인 죽음과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불신지옥'에 있죠."
영화에는 죽지 않는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무한한 존재 서복(박보검),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도망치려는 유한한 인간 기헌(공유)이라는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한 두 존재가 등장한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동행을 시작한 서복과 기헌을 통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달된다. 그렇기에 두 배우의 존재는 영화의 중요한 지점 중 하나다.
이 감독은 공유를 "담을 게 많은 배우"라고 표현했다. 그는 "공유씨를 캐스팅한 후 친해지기 위해 만나면서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부드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며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공유씨가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다. 어떨 때는 소년 같은 천진난만함이 있는데 그런 지점이 민기헌의 부드러움과 닮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처음 등장할 때는 날이 서 있는데, 서복과 동행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측면에서 공유씨가 가진 이미지가 도움이 된 게 있다"며 "실제 공유씨가 가진 면을 십분 활용하는 게 재밌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촬영을 하면서 이 감독은 공유와 반대로 흔히 알고 있는 예의 바르고 착한 박보검의 이미지 뒤에 숨겨진 서늘한 눈빛을 발견했다.
그는 "보검씨가 눈빛이 좋은 배우라 생각했는데, 찍으면서 많이 놀랐다. 눈빛의 에너지가 생각보다 컸다"며 "서복이라는 캐릭터를 설정할 때 여러 가지가 동시에 공존해 한 번에 파악하기도 힘들고, 한 문장으로도 규정하기 힘든 초월자로 규정했다. 그런 면에서 보검씨의 눈빛이 다 설명하고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서복과 기헌이 중심축이지만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 역시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서복의 존재를 은폐하려는 정보국 요원 안 부장 역의 조우진, 서복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본 책임 연구원 임세은 박사로 분한 장영남, 서복의 소유권을 지닌 서인그룹의 대표이사이자 연구원 신학선 역의 박병은, 그리고 서인그룹 김천호 회장 역을 맡은 김재건이 바로 그들이다.
그중 안 부장의 경우 당초 이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기헌, 서복과 더불어 주요하게 생각하고 만든 인물이다. 기헌은 서복을 지켜야만 자신이 살 수 있는 인물인 데 반해 안 부장은 서복을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임을 당하는 위치에 놓은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인류의 미래라는 측면에서 서복을 제거하고자 하는 마음도 갖고 있다.
영화 속 안 부장이 이야기하는 '대의'가 갖는 논리에 관해 생각한다면, 안 부장이라는 인물을 단순히 '악'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안 부장은 기헌과 닮은 듯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실제로 기헌, 안 부장, 김천호 회장 등 서복과 죽음을 둘러싼 개개인의 두려움은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두려움, 인류가 멸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내가 가진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이는 그들이 서복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각자 서복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이 감독은 "'불신지옥'에서도 소진(심은경)을 바라보는 시각과 욕망이 다 다르다. 그런 포메이션이 '서복'에 고스란히 이어져 왔다"며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복제인간이라는 소재 말고 우리가 줄기세포니 복제인간이니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는 최종 목표가 생명 연장이고, 궁극적 목표는 영생이다. 화타 이래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징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 그런 게 있었어요. 바벨탑을 보면 하늘에 닿고 싶어 하지만 사실 그게 불가능하거든요. 마찬가지로 생명 연장이라는 것도 불가능을 빤히 알면서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80세 시대를 지나 100세 시대가 됐지만 과연 우리가 행복할까요? 내가 그 나이가 됐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까? 100세까지 산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게 아니라 사실 두려운 건 아닐까? 기헌이 그걸 깨달았다고 생각해요. 죽는 게 두려운 것과 살고 싶은 건 다른 거거든요."
그러면서 이 감독은 "김 회장은 신의 권력을 얻고 싶었을 거다. 이건 믿음과도 관련이 있다. 무엇을 욕망하느냐에 따라 믿음이 정해진다고 생각한다"며 "브레이크 없는 기차를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떠한 것을 너무 당연하다고 믿는데 사실 그게 당연하지 않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너무 쉽게 꿈꾸는 것은 부질없는 욕망"이라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서복을 둘러싼 주변인의 욕망이 넘쳐나면서 서복의 욕망도 증폭한다. 뒤에 스케일이 커진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서복'을 설명하는 글에서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은 끊임없이 시간의 한계를 연장하려 하지만, 결국 생의 마지막 순간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결코 지울 수 없다. 그저 숙명인 셈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결국 극과 극의 상황에 놓인 두 남자와 그들의 험난한 여정 속에서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함으로써 삶을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 여정에서 무엇을 발견할지, 서복을 통해 자신의 어떤 욕망을 마주할지, 그리고 죽음과 삶이라는 인간의 숙명이자 쉽게 재단할 수 없는 질문에 어떤 답안을 써 내려갈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았다.
"'서복' 결과는 향후 극장과 OTT 동시 개봉이 영화계에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할 거 같아요. 책임감이 막중하고, 선봉에 서 있는 느낌이에요. 기대되고 건강한, 그리고 바람직한 시도가 됐으면 합니다. 영상물,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는 건 서로 좋은 거 같아요. 좋은 방향으로 정착되길 바랍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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