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를 지배한 것은 코로나가 아닌 ‘나훈아’였다.
추석 전야(前夜)인 지난달 30일밤 KBS2TV에서 방영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의 여운과 열기는 연휴 내내 이어졌다. 전국 시청률 29.0%(닐슨코리아 조사 결과)라는 근래 보기 드문 기록은 물론,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눈물이 난다” “왜 가황(歌皇)이라 부르는 줄 알겠다” 등 찬사가 넘쳤다. 또 “역사책 봐도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위해 목숨을 거는 거 못 봤다” 등 공연 중 그가 남긴 각종 발언은 어록처럼 온라인을 휩쓸었다.
결국 “재방송은 없다”고 공언했던 KBS는 3일 사실상 재방송 격인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15년 만의 외출’을 급하게 편성했고, 이 방송도 시청률 18.7%를 기록했다. 이처럼 대한민국이 닷새간의 연휴 동안 이렇게 나훈아에 푹 빠지게 된 이유는 뭘까.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30일밤이 되니 주변 사람들은 물론 SNS마다 ‘나훈아가 나온다더라’며 난리가 나더라. 그가 쌓은 실력과 명성이 아니면 불가능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트로트는 가사가 차지하는 서사가 매우 중요하다“며 ”최근 아이돌이나 젊은 가수들로서는 절절한 정서를 읊는다는 것이 한계가 있다. 나훈아라는 70대 가수의 입을 통해 전달됐기 때문에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예능PD는 "역설적으로 '늙음'과 '나이'로 과시하는 게 아니라 실력으로 사회를 압도할 수 있는 거장이 그만큼 적다는 방증"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일겸 대중문화마케터는 “여느 트로트 가수처럼 한가위 국민을 위로하겠다며 재미있고 웃기는 이야기를 하는 대신 작정을 하고 준비한 발언을 갖고 나왔다. 마치 ‘내 공연을 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주겠다’는 마음이 간절했다”며 “노래를 하는 마음 자체가 다르다 보니 관객들에게도 그의 진심이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④TV는 또 보여줄 수 있을까=이번 나훈아의 공연이 남긴 가능성과 과제도 만만치 않다. 공연 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오랜만에 수신료가 아깝지 않았다” “TV에 볼거리가 있으면 언제든 다시 TV로 돌아온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의 반응도 다르진 않았지만 한계도 지적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에 빼앗긴 시청자를 어떻게 되찾아올지 대안을 보여준 공연”이라며 “재방송을 하지 않은 승부수도 먹혔다”고 말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여전히 보편성 측면에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보다 TV, 특히 지상파의 위력이 크다는 것을 확인했다”면서도 “TV에 어떤 콘텐트를 담아야 할지에 대해선 앞으로 치열한 고민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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