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74)이 밝힌 작품 선택 기준이다. 25일(현지시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미국 LA총영사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는 “대본을 읽는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딱 보면 진짜인지 아닌지 아는데 ‘미나리’는 대단히 기교가 있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순수하고 진지한 진짜 이야기였다. 그게 늙은 나를 건드렸다”고 밝혔다. 이어 “그래도 제가 여우 같은 데가 있어서 정이삭 감독을 만나서 싫으면 안 했을 텐데 요즘 무슨 이런 애가 있나 싶을 정도로 진심이 느껴져서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나리’가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것은 “제가 잘한 게 아니라 정 감독이 대본을 잘 썼기 때문”이라며 공을 돌렸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할머니는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잖아요. 그런 건 국제적으로도 보편적인 이야기니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겠죠. 사실 인종차별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많이 봤잖아요. 이탈리안으로서 성공하는 ‘아이리시 맨’ 같은 영화도 있고. 그런데 ‘미나리’는 처음에는 한국인과 미국인이 각자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주장하다가도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함께 물도 찾고 하잖아요. 난 그게 굉장히 ‘유니피케이션(unification·통합)’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엔딩도 반대했는데 정 감독이 현명하게 이끌어가는 걸 보면서 역시 예일대 나온 애라 그런가 나보다 머리가 좋구나 했죠.”
수상 소감에서 스크린 데뷔작 ‘화녀’(1971)를 함께 한 김기영 감독을 언급한 이유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윤여정은 김 감독과 함께 한 ‘충녀’(1972) 등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충무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로 자리 잡았다. “감독이 굉장히 중요해요. 그것도 60살 넘어서 알았어요. 제가 스물한 살인가 두 살 때 김기영 감독님을 처음 만났어요. 정말 죄송한 거는 제가 그분에게 감사하기 시작한 건 60살이 되고 나서예요. 그분 돌아가시고 나서. 그 전엔 너무 힘들고 싫었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후회되고 죄송스러워요. 그런데 정이삭 감독님은 늙어서 만난 거잖아요. 우리 둘째 아들보다 어린데 너무 차분하게 현장을 컨트롤하더라고요. 아무도 모욕주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고 다 존중하면서.”
“네가 흉을 안 보는 감독은 정이삭 감독이 처음”이라며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정 감독한테서 희망을 봤어요. 한국 사람의 종자로다가 미국 교육을 받아서 굉장히 세련된 한국인이 나온 거구나. 한국 사람들을 흉보는 게 아니라, 걔라고 화 안 나겠어요? 그런데 그걸 다 컨트롤하는 게…. 마흔세 살 먹은 애한테 내가 존경한다고 그랬어요.” 와인 한 잔을 곁들인 그는 “지금 술이 좀 취한 것 같은데 스무 한두살 때는 감사를 잘 몰랐다”며 “김기영 감독님한테도 못한 걸 지금 정이삭 감독이 다 받는 것 같다”며 웃었다. “왜 이리 철이 없냐고 하는데 늙었다고 다 아는 거 아니에요. 제가 한국 나이로 지금 75살인데 그래도 철이 안 나요.”
자신의 연기 철학에 대해서는 “열등의식에서 시작됐다”고 답했다. 1966년 한양대 국문과 재학 당시 T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무슨 연극 출신도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아르바이트하다가 연기를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제 약점을 잘 아니까 열심히 대사를 외워서 남한테 피해를 안 주자 그게 시작이었고, 절실해야 한다는 건 나중에 알았어요. 연기를 좋아하고 잘하기도 해야겠지만 정말 먹고 살려고 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대본이 성경 같았어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도 “없다. 그냥 살던 대로, 오스카상 탔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건 아니지 않냐”며 “남한테 민폐 끼치는 건 싫으니까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이 일을 하다가 죽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은 했다”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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