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렵거나 부담스럽지 않냐고요? 전혀요. 제 첫 현장 경험부터 데뷔작, 첫 주연 모두 홍상수 감독님, 김민희 선배님과 함께한 걸요. 그 분들과의 현장은 제겐 표본이 됐습니다.(웃음)”
거장 홍상수 감독의 제자이자, 그의 신작 ‘물 안에서’의 주연 배우 신석호(35)는 이같이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건국대 영상영화학과 영화연출 전공 교수인 홍상수 감독에게 ‘영화’를 배우고, 그의 작품 현장에서 스태프로 참여하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가슴 벅찬 첫 연기의 맛도 그곳에서 느꼈단다.
이제는 어엿한 ‘주인공’으로 생애 처음으로 베를린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는다.신석호는 지난 2021년 홍 감독의 25번째 장편 영화이자 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수상작 ‘인트로덕션’으로 생애 첫 주연을 맡았고, 올해 선보이는 29번째 작품 ‘물 안에서’까지 연이어 주연을 꿰찼다. 명실상부 ‘홍상수 월드의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얼굴이 됐다.
소속사 없이 활동 중인 그가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전화 너머로 밝고도 차분하고, 예의 바르며, 온화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에 그는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다만 송구스럽게도 제가 일정이 여의치는 않습니다.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곧바로 그의 회사 근처로 향했다. 예상대로 맑고 스마트하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신석호였다.
“‘인트로덕션’ 촬영 때문에 베를린에 방문한 적은 있어요. 촬영 차 갔을 때도 굉장히 떨렸는데 영화제에 참석한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뭘 준비해야할 지도 잘 모르겠어요. (홍상수) 감독님께서 연초에 배우들을 다 부르셔서 새해 인사 드리러 갔는데, 베를린에 함께 가자고 이야기하셔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생생해요. 지금도 가슴이 뜁니다.”
홍 감독이 연출을, 김민희가 제작실장으로 참여한 ‘물 안에서’는 2월에 열리는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인카운터스(ENCOUNTERS) 부문에 공식 초청됐다. 새로운 영화적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지난해 신설된 경쟁 섹션으로, 전통적인 형식에 도전하는 픽션과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고 있다. 어떤 ‘표준’에 갇히지 않고 지속적으로 ‘확장’하는 장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감독들을 초대한다.
‘물 안에서’는 영화 전공 학생들이 갑자기 제주도로 내려가 영화를 찍으며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신석호는 배우를 꿈꾸다가 스스로 갑자기 자신의 창조성을 확인하겠다며 사비를 털어 영화 연출에 도전하는 주인공 ‘성모’역을 맡았다. 그를 중심으로 같은 학교 세 사람이 모여 돌과 바람이 많은 제주도로 향한다. 뭘 찍을지 몰라 여기저기를 한참 돌아다니다, 해변에서 혼자 쓰레기를 줍고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신석호는 “(감독님의 영화는 늘 그렇듯) 주제를 정확하게 콕 집어 말하긴 어럽다. 확실한건 감독님 영화들 가운데 가장 실험적인 도전이 많았다는 것”이라며 “감독님께서도 그 부분에 의의를 두셨다. 즉흥적으로 작업하시는 분이라, 늘 우리는 예측할 수 없었다. 구체적인 피드백 없이 ‘알아서, 느끼는 대로, 편안하게’ 하라고 하신다. 이번 작품은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분들은 감독님의 이런 스타일을 어려워하세요. 물론 통상의 현장과는 다른 점이 많아 표준이라고 보긴 어렵죠.(웃음) 저의 경우는 대학교 제자였기 때문에 그간 소통을 많이 해왔고, 제 영화관에도 절대적 영향을 주셔서 부담스럽기보단 표본이 됐어요. 저는 그저 매번 영광스럽고, 행복하고, 좋았고요.”
스태프에서 조연으로, 주연으로 점점 참여하면서 달라진 건 없을까. 그는 “감독님의 현장은 배우도 스태프가 되고, 스태프도 배우가 되는, 그냥 모두가 함께 하는 현장이라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면서도 “다만 처음에는 워낙 관객 입장으로 객관적으로 작품을 아예 못봤는데 이제는 조금은 볼 수 있게 됐다. 고정된 영화의 규칙을 따르지 않아도, 이렇게 몰입이 되고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게 정말 신기하다.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감독님은 정말이지 천재 같다”며 웃었다.
제작실장이자 연기 대선배 김민희와의 작업은 어땠을까.
신석호는 “김민희 실장님은 촬영 일정 조율 및 로케이션 섭외, 촬영 지원 등 통상 PD들이 하는 모든 업무를 담당하셨다. 워낙 오랫동안 현장을 지켜오셨기 때문에 손발이 척척 맞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업이 배우이시다 보니, 배우들의 입장에서 특히 케어를 잘해주신다. 배우들이 힘들어 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콕 찝어 정확하게 이야기해주시고 도와준다. 연기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도 해주신다. 워낙 성격이 털털하셔서 모든 후배들이 편안해 한다”고 덧붙였다.
함께 호흡을 맞춘 하성국, 김승윤은 모두 건국대 영화과 동문들이다. 하성국은 함께 수업도 들었던 동기이고, 김승윤은 후배다.
“성국이는 워낙 잘 알고 지냈던 사이라 서로 의지가 많이 됐어요. 연기할 때도 굉장히 편했고요. 승윤이는 현장에서 몇 번 마주친 인연이 있고요. 같은 학교 후배라 그런지 처음부터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제주도에서 촬영하며 때로는 함께, 때로는 따로 자유시간도 가지며 여행 온 기분으로 촬영에 임했어요. 다들 워낙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깊어 어려운 건 별로 없었어요.”
연기에 ‘올인’ 하지 않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이유도 궁금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라며 잠시 말을 멈춘 그는 이내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연기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했다.“큰 욕심을 가지면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자연스럽게 열린 마음으로 일도 연기도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조급해지지 않기 위해서요. 저는 지금도 제 능력 이상의 것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형태로든) 감독님과의 작업 기회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고, 그 외에도 새로운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참여하고 싶어요. 배우로서의 커리어가 끊이질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현실에 너무 쫓기면 안 되잖아요. 꿈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저만의 방식으로.(웃음)”
‘물 안에서’는 오는 2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제73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상영)로 선보인 뒤 올해 상반기 국내 극장 개봉할 예정이다.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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